“저 사람은 참 인간적이야”라는 말 종종 사용하시죠? 여러분에게 ‘인간적이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브랜드가 인간적일 수 있을까요? 인간적인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면 치킨 브랜드 처갓집의 마스코트 처돌이가 떠올라요. (가끔 비뚤어져 있는)검은 눈에, 오동통한 몸통, 닭 벼슬에 앞치마까지. 못생긴 치킨 인형(처돌아 미안해)이 왜 나오냐 싶으시겠지만, 이 인형은 2019년 처갓집과 SNS를 터뜨려 버립니다. 수많은 밈을 생산하며 ‘덕후’를 상징하는 단어의 단초가 되어버린 이 인형 프리미엄까지 붙어 중고거래 시장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브랜드의 얼굴 덕분에 처갓집은 다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어요.
비마이비는 구독자 여러분께 ‘인간적이다’라는 주관적인 기준에 세 가지 가이드를 드리려고 해요. ①솔직하고 진정성이 있는 ②브랜드의 성격이 보이는 ③브랜드에게 얼굴이 되어주는 세 가지 가이드 중 아래 다섯 브랜드는 어디에 속할지 생각하면서 오늘의 레터를 끝까지 읽어주세요 🙂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처참한 상황이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그것도, 펑크 특집 예고를 띄우면서 말이죠! 지난 3월 21일, 문명특급 유튜브 채널에는 썸네일부터 90도 허리 인사를 하고 있는 진행자 재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어요. ‘죄송하다. 펑크났다. 근데 우린 또 길을 찾았다.’라는 간결한(근데 이제 멘붕을 곁들인) 메시지는 조회수 140만 회를 훌쩍 넘겼죠.
펑크 공지 영상에 달린 댓글들. 처한 위기상황과 감정을 공유하고, 해결 과정을 공유하는 인간적인 브랜드는 구독자들이 응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요. (사진을 눌러 영상과 댓글을 직접 확인해보세요!) / [유튜브 문명특급 댓글창 캡쳐]
문명특급(이하 문특)은 ‘신문물을 전파하라’라는 슬로건 하에 MZ 세대가 즐기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 특히 K-pop과 대중문화방송 관련 콘텐츠들을 활발하게 선보이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채널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된 것은 바로 ‘솔직함’이에요. 인터뷰를 진행할 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고,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타 인터뷰에서 묻지 않는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해당 아티스트가 편안함을 느껴 솔직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거죠. 다른 인터뷰에서도 문명특급을 언급할 만큼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죠.
이런 솔직함은 연예인 대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제작진의 이야기를 담는 콘텐츠에도 적용되어, 팬덤을 만들고 사람들이 문특 팀의 ‘기획’ 일 자체를 응원하게 만들어요. 2018년부터 시작해서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되어 온 문특 팀은 제작의 부족한 자원, 쉽지 않은 섭외, 밤샘 작업 등 현실적인 한계들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드러냈고, 구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성장해나가고자 했습니다. 특히 문명특급 콘텐츠 중 ‘리얼다큐’편은 그런 고민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리즈예요. 콘텐츠를 만들며 하고 있는 고민과 딜레마, 구독자들 반응에 대한 피드백, 앞으로의 기획과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며 인간적인 브랜드의 면모를 드러내는 거죠.
문명특급의 리얼다큐 시리즈. 끊임 없이 내부에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방향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요.
이런 사전 과정이 있었기에, 문특의 갑작스러운 펑크 공지는 사람들의 응원 댓글과 폭발적인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사람이 어떻게 항상 완벽합니까?’라는 영상 속 질문은 어쩌면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인간적인 브랜드의 모습이기에 더욱 공감을 얻을 수 있었겠죠? 펑크라는, 어찌 보면 수습 불가능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이렇게 솔직하고 재치 있게,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잘 해결해 내는 제작진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네요.
구독자 여러분의 최애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비마이비 인스타그램에서 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브랜드vs브랜드 8번째 대결, ‘라이언 vs 펭수’에 정말 많은 분들이 댓글과 투표로 참여를 해주셨는데요. 그만큼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기면 자꾸 새로운 굿즈나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죠. 이번에 소개해 드릴 캐릭터 브랜드는 오롯이 사람들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나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드러내면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잔망루피 입니다.
루피야… 어쩌다 그렇게 됐어…(좌) 정상 루피 (우) 흑화한 잔망루피 / [자료 출처 잔망루피]
잔망루피는 캐릭터가 태어나게 된 계기부터 인간미가 넘치는 브랜드입니다. ‘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착하고 순한 비버 캐릭터 루피가 사람들의 ‘밈’과 ‘짤’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잔망루피’로 불리게 된 것이죠. 기존의 루피가 순하고 착하고 친구들을 위해서 요리하고 수줍게 웃는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이미지였다면, 사람들이 온갖 패러디 짤을 통해서 재생산하고 있는 잔망루피는 인간적인 면이 매우 강조되었어요. 표정과 감정 표현이 훨씬 다양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헤어스타일을 소화하며 전혀 다른 연령대가 되기도 하죠.
현대인들의 속마음을 투영하는 잔망루피 / [자료 출처 잔망루피 인스타그램]
게다가 잔망루피 캐릭터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인간적인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엿볼 수 있어요. 초반의 잔망루피가 ‘짤’ 속에서 존재할 때에는 굉장히 특이한 헤어스타일, 주관이 뚜렷한 말투를 주로 구사했어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하고 브랜드화되면서 ‘월요병에 걸린 루피’, ‘일하다 지친 루피’ 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나타났어요. 캐릭터에 친근감을 느낀 사람들이 잔망루피의 다양한 변주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된 거죠.
이렇게 팬들이 루피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보면 개구리 페페가 생각나요
커피를 좋아하시는 my B letter 구독자 여러분이라면 서울숲 앞 파란 문, 인스타그램에서 한 번씩 보았던 경험이 있으실거예요. (지금은 뚝섬역 인근, 더욱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이전했답니다!) 바로 모멘토 브루어스. 이 브랜드의 처음 모습의 특이점은 의자가 없었다는 것. 커피를 내려주는 바에 기대어 바리스타와 나누는 스몰 톡(small talk)이 이 브랜드의 인간적인 면모에요.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바리스타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바리스타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더 건네고, 어느새 앞에 빈 잔이 쌓이게 됩니다. 다른 손님이 빵을 갖고 들어오면, 그 빵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죠. 카페에 온 건지, 친한 형네 집에 놀러 온 건지 헷갈릴 만한 모멘토 브루어스만의 정의 힘 때문에 이 브랜드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팬이 SNS에서도 줄을 이었죠.
모멘토 브루어스는 바, 창틀, 서랍장 어디든 테이블이 될 수 있어요 / [사진 비마이비]
의자가 없어 당황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맞추어 의자를 하나 둘 씩 놓기 시작했지만, 이 브랜드의 초기 팬들은 초창기 모멘토 브루어스의 자유롭고 인간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었어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팬들은 새로이 이전한 매장에서도 (의자를 냅두고) 바 앞에서 괜히 서성이는 것이 이 브랜드에서 만큼은 더 자연스럽다고 해요. 종이 컵에 직접 써주는 마시는 사람의 이름과 커피를 내려준 이의 이름, 한 마디 인사말까지. 이 브랜드에서 느꼈던 좋은 기억을 담은 종이 컵은 한동안 버리기 아까운 브랜드의 흔적이 되어요.
포토스팟이 되기도 했던 모멘토 브루어스의 서울숲 파란벽, 현재는 할머니 댁 같은 푸근한 분위기의 매장으로 옮겼어요. 여전히 브랜드의 색을 잃지 않고 있는 모멘토 브루어스 / [사진 비마이비]
구독자 여러분은 친구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나시나요? 그냥 같이 만나서 공통된 화제로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아요? 인간적인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고객과 만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경험을 그저 제공하고 사람들이 그걸 즐기기를 바랄 뿐이죠. 즐거우면, 분명 또 찾게 될 테니까요!
룰루레몬은 운동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함께 하기를 바라요. 그래서 신발 등 여러 품목으로 아이템을 확장하는 대신, 가장 필요한 아이템에만 집중하여 좋은 품질을 제공하죠 / [자료 출처 룰루레몬]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룰루레몬(lululemon)입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매장을 열어 운영하기 시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단순히 요가복 판매에 그치는 게 아닌, 개인과 커뮤니티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죠. 룰루레몬이 타 스포츠 의류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보이는 부분도 바로 커뮤니티를 통한 자발적 ‘웰빙(well-being)’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나에게 맞는 운동, 운동복, 생활 패턴을 만들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고 그를 통해 운동 외의 시간에서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자 해요.
룰루레몬의 커뮤니티. 룰루레몬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 [자료 출처 룰루레몬]
해외의 룰루레몬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매장 담당 직원이 ‘판매자’가 아닌 ‘에듀케이터’로 불리며, 처음 접해보는 소비자들에게도 다양한 운동법, 생활 패턴을 나누고 더 나아가 sns를 통해 공유하죠. (국내 룰루레몬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도 운동 관련 다양한 정보와 챌린지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특히 룰루레몬 앰배서더들을 통해 커뮤니티 내에서 팬 스스로가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요. 앰배서더들은 룰루레몬에서 다양한 온·오프라인 클래스를 주최하기도 하고 제품 사용 피드백을 룰루레몬에 전달해 더 발전적이고 편안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죠. 이런 적극적·자발적이고 가치지향적 활동들이 브랜드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작용해 더 많은 팬덤을 만드는 거죠.
다섯 번째 인간적인 브랜드는 <책보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민음사TV입니다. 여러분에게 출판 브랜드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책’과 관련한 브랜드를 떠올리면 파주 출판 단지, 광화문 교보문고와 같은 거대한 규모가 생각나기도, 독립 출판사나 부산 영도의 ‘손목서가’와 같은 자그마한 규모가 떠오르기도 해요. 출판 브랜드는 서점보다도 뒤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가 있다면 그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정도로 우리의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죠. 하지만 그런 틈을 비집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녹아드는 출판 브랜드 민음사와 민음사TV. 책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민음사에 ‘얼굴’을 부여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신기하게도, 이 민음사TV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책은 재밌다’는 메시지. 구독자가 책에 큰 애정이 없더라도 언젠가 책을 펼치게 만들고 싶은 느슨한 연대를 민음사TV는 일상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음사 책 없는 민음사 tv. 진정성 있는 모습
‘인간적이다’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 주 레터를 마무리하며 인간적인 사람에 대해 먼저 떠올려보기로 해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먼저 이야기하지 않아도 진정성과 따듯함이 느껴지는 사람을 인간적이다고 하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차가운 로고,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닌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이 있고, 내 말을 들어줄 귀가 있는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랜드를 우리는 인간적이다라고 느끼고 있어요. 민음사TV를 통해 ‘민음사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단순히 문학집을 만드는 곳, 책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어떤 의도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죠. 브랜드에 진심으로 팬인 직원들의 모습, 그 직원들을 진정성 있게 우대해 주는 브랜드의 모습을 보면서 그 브랜드 자체를 응원하게 되기도 하고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브랜드, 다시 한번 잘 돌아보시면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좋아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브랜드, 당신은 어떤 휴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