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새로운 브랜드, 좋아하는 브랜드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세요? 혹시 수박C만 카메라를 드나요? 일부 식당에서는 사진 찍기 대신 음식을 온전히 즐기기를 권하고는 있지만(수박C도 일부 동감해요), 내가 본 것을 얼른 SNS 혹은 단톡방에 자랑하고 싶은 근질근질함은 참을 수 없어요. 이렇게 내가 즐긴 취향을 전시하는 것이 간편해지고 당연해진 시대, 수박C는 이것 또한 브랜드를 통해 나를 브랜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수박C가 먼저 ‘내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를 자랑할게요. 여러분도 댓글로 마음껏 자랑해주세요.
쿠키도 패션이 되는 자랑, CAFÉ A.P.C.
여러분에게도 기꺼이 팬이기를 자처하는 패션 브랜드가 있나요? 그 브랜드의 팬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브랜드의 경우에는 ‘옷’ 자체가 아니라 깜찍한 ‘쿠키 한 조각’이 팬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데요. 바로 CAFÉ A.P.C.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프랑스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 A.P.C.가 동탄에 매장 아니, 카페를 오픈해 화제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전 세계 최초로요! 이런 카페형 매장을 차리는 사례가 요새 자주 보이는데요. 이른바 ‘티타임 리테일’, 매장과 카페를 결합하여 팬들이 더 오랜 시간 머물게 하려는 전략이래요. 수박C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신상품을 입어보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최초로 탄생한 CAFÉ A.P.C. 를 두 눈으로 보고 예쁘게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마음에요!
브랜드의 철자를 딴 A, P, C 모양의 쿠키는 진작 솔드아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포스트를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런 반응을 보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즐기고 왔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느껴져요. 아마도 이분은 ‘CAFÉ A.P.C.’에 가서 쿠키로 브랜드 철자를 완성해 인스타그램에 올릴 기대감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했을지 몰라요. 브랜드는 값비싼 마케팅이 아닌 ‘쿠키’ 하나로 팬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물하고, 자랑에 실패했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죠.
A.P.C.의 생지 데님은 브랜드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상품이에요. 패치도, 뒷주머니의 스티치도 없지만, 특유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핏의 디테일로 A.P.C.의 데님임이 뚜렷하게 드러나죠. CAFÉ A.P.C.역시 A.P.C.가 제안하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에요. 이곳에서만 먹고 느낄 수 있는 시그니쳐 메뉴 구성과, 중앙 계산대의 12각형의 독특한 구조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가 찾아낸 A.P.C.의 디테일을 자랑하게 만듭니다.
따뜻한 자랑의 기록, 요시고 사진전
MZ세대에게 전시란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도록을 보며 고개만 끄덕이다 오는 활동은 아닐 거예요. 인증샷은 필수, 대놓고 포토 부스까지 준비해둔 요즈음의 전시장입니다. 그중 웨이팅이 무서워 갈 엄두도 못 내는 뜨거운 사진전이 있죠. 서촌 그라운드 시소에서 열리는 요시고 사진전입니다. ‘따뜻한 휴일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스페인의 포토그래퍼 요시고가 건축, 다큐멘터리, 풍경이라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하여 선보여요. 이 사진전은 코로나 19로 더해진 여행의 갈증과 일상을 해소하기에 딱 좋은, 뻥 뚫린 바다와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죠. 하지만 요시고 사진전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죠?!
요시고 사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따뜻함, 휴가, 수면 위 동심원 그리고 ‘포토존’이라는 키워드가 필수예요. 일방적으로 사진을 보고, 일행과 의견을 나누는 정도가 아닌 전시’복합’공간에서 보고, 또 찍고 찍히며 사진전을 입체적으로 즐기기도 합니다. 사진전에서 찍은 사진뿐 아니라 코로나 19가 지나가고 나면 자신은 어떻게 요시고의 사진보다 더 멋진 휴가를 즐길지 계획까지 늘어놓으며,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의 공감을 사는 자랑을 즐기는 중입니다.
인증샷의 메카로 알려진 요시고 사진전이지만, 동시에 ‘어떤 것을 왜’ 자랑하고 싶은지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진전 4층에 다다르면 이런 문구가 나와요.
“풍경을 즐기기보다 놀러 왔다고 주변에 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죠. (중략) 물론 저 역시 관광객 중 하나라는 점은 잊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전시회 혹은 #전시라고 검색했을 때 전시에 관한 내용보단,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나’의 사진이 주로 나옵니다. 숙소 검색을 위해 지역의 #호텔을 검색해봐도, 호텔의 정보보다는 얼마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하얀 침구 위에서 ‘내가 예쁘게 찍혔는지’가 나와요. 우리는 무작정 ‘즐기는 내 모습’을 자랑하기에 앞서, SNS에 나를 드러내는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진 우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이런 생각의 ‘일시 정지’까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요시고의 메시지는, 휴가의 풍경뿐 아니라 ‘생각의 휴가’까지 주는 사진전입니다.
3천 원의 귀여운 허세, 에스프레소 바
오늘 하루도 버티기 위해 카페인을 ‘수혈’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커피. 매일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되어버린 ‘아아메’와는 달리, 요즘 ‘에스프레소’는 여유와 자랑의 상징이 되었다는데요. ‘그걸 써서 어떻게 마셔?’라는 의문에 보란 듯이 2~3잔씩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쌓아놓은 인증샷이 인스타그램에 많이 보여요. 커피 바에 기대어 친구와 간단한 안부를 묻는 대화 소리, 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강렬하고 따뜻한 에스프레소가 입안에 퍼지는 모습이 정통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문화라고 하는데요. 이탈리아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에스프레소 바가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생기는 것을 구독자 여러분도 느끼셨을 거예요. 의자도 없고 에스프레소만 금방 호로록 마시고 나와야 하는 곳이지만, 이른 시간부터 카페를 찾은 손님들의 긴 줄이 늘어서며, 지나가는 행인들로 하여금 ‘도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이길래?’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어요.
에스프레소 바 열풍의 시작 중 하나는 약수시장 안에 위치한 리사르 커피에요. 이 브랜드는 ‘Better than Espresso’를 슬로건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목표죠. 우리에게 익숙한 카페와는 다른 문화를 선보이며 ‘나도 에스프레소 탑을 쌓았다’며 사진을 통해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게 만들어요.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대세 ‘에쏘바’가 또 있어요! 명동에 위치한 몰토 에스프레소 바는 남산타워와 명동성당 뷰로 최근 가장 뜨거운 에스프레소 바에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발코니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눈앞 명동성당은 어느새 피렌체의 두오모. 에스프레소 바답게 크림이나 소금이 올라간 다양한 에스프레소 메뉴도 즐길 수 있어요. 다른 자랑에 비해 몇천 원 들지 않는 귀여운 허세랄까요? 서울 이곳저곳 에스프레소 향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퍼지고 있어요.
자랑하고 싶은 음악과 사색,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
구독자 여러분은 어디서 사색과 집중, 고요를 누구와 즐기시나요? 보통 사색이라 하면 혼자서 혹은 조용히 시간을 갖고 오는 게 보통인데요, 요즘은 이 사색의 시간과 공간마저 자랑하는 시대입니다. 그 중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이하 카메라타)’라는 브랜드는 음악에 집중하며 사색하기에도 너무 좋은 곳입니다. 카메라타는 동호회라는 뜻. 나만 알고 싶은 비밀스러운 동호회이지만, 동시에 이 브랜드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곳이죠.
카메라타는 브랜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아’ 다르고 ‘어’ 다름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커피를 구매하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가 아닌 ‘음악을 들으러 오시면 커피 한 잔을 드립니다’라는 카메라타의 콘셉트는, 카페이기 이전에 음악감상실로서의 정체성을 우선하는 공간임이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음악을 위해 설계된 온갖 스피커의 배치와 스피커를 향한 섬세한 테이블의 각도, 그리고 콘크리트 벽과 한쪽에 쫙 진열된 LP. 입장부터 퇴장까지, 이 브랜드는 하나의 본질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수박C는 인증샷을 위한 찰칵 소리가 음악에 방해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2천 개가 넘는 #황인용의뮤직스페이스 태그가 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과 수많은 리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봐요.
(자랑도) 그냥 하지 말라, 송길영의 말
그럼 여기서 잠시 멈춰, 우리는 왜 자랑을 하게 되는 걸까요? 수박C는 이런 자랑이 ‘나는 이런 것도 하는 사람이야’, ‘나 이렇게 좋은 곳 잘 찾아’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셀프 브랜딩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그 취향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 곧 퍼스널 브랜딩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퍼스널 브랜딩도 결국에는 브랜딩! 앞서 보았던 본질에 집중하는, 그리고 팬을 만들기 위해 그 안에서 재미있는 변주를 주는 브랜드처럼, 우리도 무엇을 자랑하고 결국 나를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한 고민과 방향이 필요해요.
데이터 분석가 송길영은 책 <그냥 하지 말라>에서 ‘당신의 모든 일상이 기록이며 메시지다’고 말해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방향성을 갖는다면 더 많은 것을 축적하고, 더 깊은 의미를 뽑아낼 수 있다는 거죠. 내 삶의 일관성은 마치 본질에 집중하는 브랜드처럼, 나만의 히스토리를 만들고 그로부터 에센스를 추출해낸 경험들이 쌓여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모인 취향은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더 심도 있는 자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